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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없는 시선

캄캄한 밤, 한 순간의 섬광은 온몸을 짓누르던 어둠 속에서 모든 것을 순식간에 드러낸다. 그리고 그 순간의 강렬하나 빛이 사라진 후, 어둠 속에 남겨진 눈은 방금 전의 잔상을 간직한 채 그 아릿함을 쫓아 본질을 갈망한다. 이제 '눈'은 사라지고 사물을 바라보던 '시선'만이 남게 된다.

빛이 사라지고 어둠만이 지속되는 시간은 오히려 현상의 이면에 오롯이 다가갈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주고, 더불어 그에 대한 명상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낸다. 그래서인지, 명상적이고 관조적인 작업을 선보여온 작가 도윤희는 유독 '밤'과 연관된 어구를 작품의 제목으로 빈번히 사용해왔다. 이번 전시는 지금까지 지속해온 밤과 어둠, 그리고 그로 인해 더더욱 명료하게 드러나는 진실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보다 집약적으로 발화하고 있다. 표면과  형태를 초월함으로써만이 비로소 대상의 실체를 바라볼 수 있다는 그는 그러기에 육신의 눈으로 바라본 것들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내기 위해 '눈이 없는 시선'이라는 독특한 접근방식을 제안한다. 육신의 눈은 빛의 도움을 받아 사물의 외면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고, 빛이 사라진 어둠 속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그러나, 육신의 눈을 잊은 상태에서 우리의 시선은 사물의 외면을 넘어선 본질에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전시 <눈이 없는 시선>은 도윤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현상의 배후에 숨겨진 것들을 찾아내가는 과정을 하나의 응집된 실체로 구체화한다. 그리고, 이 '눈이 없는 시선'으로 사물을, 사람을, 그리고 세계를 바라보며 그 본질에 다다르기를,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매번 확인하며 스스로 안도하기를 작가는 기대하는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드러나는 도윤희의 작업은 추상적이고 감각적이며, 그 작업들의 바탕을 이루는 사유는 철학적이고 관념적이다. 그러나 그의 작업 이면에는 작가 자신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가 맺고 있는 관계에 귀 기울이는, 그리고 이것을 적극적으로 소통하고자 고민하는 도윤희의 또 다른 모습이 존재한다. 그림을 그린다기보다는 글을 적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의 작업은 마치 절대자의 의지를 듣고 충실히 받아쓰는 구도자의 자세를 떠올리게 한다. 작업에 임하는 도윤희의 이러한 태도는 실제로도 작업실 한 켠에 놓인 오래된 책상에 앉아 생각들을 정리하곤 하는 그의 오랜 습관과 분리될 수 없는데, 전시장 한 구석에 작은 방의 형태로 재구성된 이 공간은 도윤희의 작업이 발원하는 모태이며 작가 자신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개인, 혹은 사회와 관련된 이슈들에 대한 그의 반응은 때로는 시처럼, 때로는 일기처럼, 때로는 선언처럼 글을 통해 구체화된다. 언어의 형태로 일단 발화된 사유는 불처럼 타오르는 분노가 아니라 물처럼 흐르는 고민으로 내면화되고, 다시 오랜 시간 작가의 내면에 축적되어 있다가 마침내 액화된 감정으로 화면을 이룬다. 이러한 과정에서 현상을 관조하던 도윤희의 시선은 육신의 눈을 버린다. 육안으로 바라보는 한계를 부인하고 극복하기 위해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는 행위는 현실로부터의 도피라기보다는 오히려 보다 명료한 확신에 이르기 위한 적극적인 선택이라고 보여진다.

살아온 개개의 시간과 경험, 그리고 그것들이 쌓여 이루어온 서로 다른 역사를 지닌 사람들에게 동일한 감정을 잠시나마 이끌어내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눈을 감고 바라본 본질의 소리를 받아 적은 도윤희의 작업은 사유와 언어의 사이 그 어딘가에 머무르며 명확히 규정되지 않기에 어쩌면 보편적인 공감을 더욱 풍부하게 이끌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그의 고집스러운 여정이 제공한 결과물들은 관람자 개개인에게로 들어가 액화되어 흐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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